8월은 내 생일과 와이프 생일이 겹쳐 있는 달이다. 두 달 전 아이와 함께 여행을 이미 갔었지만 이번에는 둘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싶었다. 그렇게 반나절 항공 티켓을 검색하다 우연히 찾게 된 인천 – 사가 항공편. 또 일본인가 싶었지만 사실 듣도 보도 못한 곳이다. 위치를 보니 후쿠오카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처럼 보였다. 그리고 찾는 자료 사진마다 자전거가 보였고 불현듯 자전거 여행 어떨까? 생각하며 점점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은 여러번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주로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했지 자전거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자전거 이용률 70%과 함께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자전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건 머릿 속에 박혀있었다. 그래서 한번 겪어보기로 했다.
1. 내 자전거로 이용할까? vs 대여 자전거를 이용할까?
이 문제는 시작부터 여행 1주일 전까지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굳이 자신의 자전거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대여를 통해 충분히 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묵을 호텔은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었다. 대부분 호텔이 무료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전거를 챙겨갔다. 그 이유는 직접 자전거를 가져가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 혹은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추후 자전거 여행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자전거를 챙겨가기로 했다. 이후 발생하는 문제와 해결방법을 아래 후술하도록 하겠다.
2. 수하물 포장 이슈
자전거는 크기 때문에 일반 수하물로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수 수하물로 붙여야 한다. 공항에서 자전거와 같은 대형 수하물을 포장해주는 서비스도 있는데 개당 3만원이다. 우리의 경우 자전거가 2개이기 때문에 총 6만원이 든다. 타산이 맞지 않아 결국 자전거를 구입한 매장에 찾아가 박스 포장을 부탁드렸다. 와이프의 자전거는 스트라이다인데 접어서 스트라이다 박스에 넣고 끝이었다. 하지만 내 자전거가 문제였다. 접이식도 아닌데다 막상 넣으려니 일반 자전거와 다를바 없는 크기여서 반조립 수준으로 분해시켜 겨우 박스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포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특수 수하물 규정을 살펴보는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박스 사이즈가 규정보다 컸던 것이다. 수하물 규정은 항공사마다 다른데 내가 이용하는 티웨이 항공의 규정은 아래와 같다.
– 가로 + 세로 + 폭 세 변의 합이 203cm 이하
– 무게가 15kg를 초과하지 않아야 함
– 위 사항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수하물 처리 불가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다. 게다가 초과 시 추가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와이프의 스트라이다 박스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 자전거 박스는 203cm 기준에서 20cm를 초과하여 박스를 잘라서 규격에 맞춰야만 했고 사이즈가 줄어든 까닭에 앞바퀴만 떼어냈던 것을 뒷바퀴까지 떼어내야 겨우 박스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간혹 사이즈는 보지 않고 무게만 체크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출국땐 안보고 현지 공항에서 돌아올땐 사이즈를 재어보고 거부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도 인천과 사가 공항에서 수속시 수하물 사이즈를 보지 않았지만 이건 카운터 직원의 재량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운에 맡기기보단 문제가 되지 않게 준비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자전거가 박스에 포장된 모습
자전거 박스 2개의 무게가 30kg를 넘지 않아서 패스
3. 수하물 포장용 박스 보관 이슈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2대를 모두 무사히 수하물에 싣고 떠났다. 사가 공항을 도착하고나서 또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자전거를 포장했던 박스를 잘 보관했다가 귀국시에 다시 사용해야하는데 사전에 공항에 코인라커에 보관하는 것으로 계획을 했었다. 가장 큰 코인라커는 1일에 600엔이고 박스를 접어서 넣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코인라커에 큰 사이즈가 없고 작은 사이즈(300엔)과 중간 사이즈(400엔) 뿐이었다. 일단 멘탈 부여잡고 스트라이다 박스부터 넣어보기로 했다. 꾸역꾸역 발로 밟아가며 2번 접어서 넣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또 문제가 되는 내 자전거 박스.. 2번 접고 난 후 있는 힘껏 기역자로 꺽어서 겨우 우겨 넣을 수 있었다. 결국 600엔 짜리 대형 코인라커 1개에 들어갔을 박스 2개를 400엔짜리 중형 코인라커 2개에 각각 하나씩 박스를 넣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4. 분해된 자전거 조립 이슈
공항 코인라커에 박스를 넣고 남은 것은 와이프의 자전거와 내 분해된 자전거.. 와이프의 스트라이다는 접은 것을 펴는 것으로만으로 세팅은 끝났다. 하지만 역시 내 자전거는 앞바퀴, 뒷바퀴, 안장, 핸들바, 페달까지 분해가 된 상태라 공항 한 가운데서 자전거 조립쇼를 펼쳐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이동 중에 체인이 꼬였는지 체인링과 뒷드레일러에 체인을 손에 기름때 묻혀가며 맞춰야 했고 시간은 계속 갔다. 기다리는 와이프에게 미안해 마음만 급해져갔고 식은 땀만 줄줄.. 결국 박스 보관 + 자전거 조립에 1시간 이상을 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조립하면서 왜 가져왔나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시 집에 갈때 다시 분해하고 박스 포장 할 생각에 머릿속이 잠시 복잡했다. 일단 이렇게 도착해서 여행 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주변을 감상하며 페달을 밟고 숙소로 평화롭게 달리면 된다.
5. 공항에서 사가역까지 라이딩
공항에 나와보니 흐리다는 날씨예보가 우습다는듯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였다. 기온은 섭씨 28도.. 하지만 바람이 불어 그렇게 덥지만은 않았다. 자전거가 휘청 거릴 정도의 강풍이라는게 조금 흠이었지만..
공항에서 호텔이 위치한 사가역까지는 15km 정도이고 공항에 도착하면 시내까지 가는 버스가 시간에 맞춰 오는데 이걸 타면 25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우린 자전거로 이동하기로 했다. 애초에 자전거 보관용 박스를 공항 코인라커에 넣어버려서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갈 방법도 없었다.
우린 중간 중간 구글맵으로 위치를 체크해가며 사가역으로 향했다. 바람이 생각보다 쌨다. 와이프가 모자를 쓰고 달리던 중 바람에 모자가 날려 중심을 잃고 낙차했다. 출발한지 20분 만이었다.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조심해야하는 것은 부상이다. 타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심하게 넘어진것 치고는 무릎만 살짝 까진 정도였고 다행히 머리나 발목 부상은 없었다. 와이프는 바로 일어나 상처 부위에 밴드를 붙이고 다시 출발 했다. 그렇게 작은 사고가 있은 뒤 조심스럽게 주행했다. 공항 앞에 펼쳐진 논밭을 지나 서서히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끝차로에서 달려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인도로 달렸다. 자전거 3대가 병렬 주행해도 문제 없을 정도의 넓은 폭의 인도로 가는 동안 어린아이, 학생,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표현상 인도라고 썼지 자전거겸 보행로 였다.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고 횡단보도는 자전거 통행선이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물론 인도가 좁아지는 구간도 있었고 자동차 도로에 자전거도로가 있는 곳도 간혹 있었다. 차도에 자전거 도로가 있는 경우에는 차선의 일부가 아닌 자전거용 차선이 독립적으로 배치되어있었다. 여지껏 일본 여행을 해보면서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부분을 이번 자전거를 타며 느꼈다.
6. 자전거 주차
호텔에 도착해서 프런트에 자전거를 주차할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호텔과 사가역 사이에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고 설명해주었고 그 곳에 내 자전거를 주차해보았다. 주차는 앞바퀴를 레일에 굴려 밀면 잠금장치에 앞바퀴가 물리게 된다. 자전거를 찾을 땐 정산 기계에서 자전거 레일 번호를 누르고 제시된 요금을 지불한다.(주차장마다 요금이 다름) 그리고 정산 버튼을 누르면 해당 번호의 레일에 잠금장치가 풀리고 자전거를 꺼내면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누구나 번호를 눌러 요금을 지불하고 자전거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자전거 자체에도 별도 잠금장치를 해야 도난 위험에 덜 노출 될 수 있다.
자전거 주차장이 자동차 주차장 뺨친다.
7. 호텔에 자전거 보관
아무래도 외부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면 도난 위험이 있어 호텔안에 자전거를 보관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보관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침 우리가 묵을 룸의 위치가 복도 끝이라 문 앞 공간에 자전거를 둘 수 있었다. 덕분에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 걱정없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호텔 복도 구석에 주차
해보고 느낀점
1. 다음에는 폴딩 자전거를 가져가거나 현지 대여자전거를 이용할 것 같다.
자전거가 폴딩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이동, 보관에 적지 않은 시간적 손실차를 보여준다. 다음에는 정비성이 용이한 폴딩 자전거를 준비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대여 자전거도 이용해볼 생각이다.
2. 이곳의 자전거 인프라가 부럽다.
여긴 도심지역도 아니고 소도시 규모의 작은 동네다. 자전거로 3~4시간이면 시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규모와는 다르게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 그리고 자전거를 레져의 범주보단 생활 속에 깊숙히 접해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느껴졌다. 단순히 시설 확충이나 관련 법 강화로는 어렵다는게 느껴진다. 자전거에 대한 의식이 좀 더 발달할 필요가 있다는걸 더 크게 느낀다. 어떤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를 논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 문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3. 다음에 다시 가보고 싶다.
큰 기대 없이 왔던 까닭에 준비도 좀 부족했고 아쉬웠던 부분이 많아 여운이 남는 여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이제 그만가야지 하면서도 이 곳은 다시 가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고 관광지라기에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곳곳에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 덕분에 일본 특유의 느낌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내 경험에는 여행객에게 너무 친절한 서비스는 그만큼 그 지역의 색을 희석시킨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여기서 말하는 친절함의 예를 들자면 곳곳에 한글 표지판이 있다거나 현지언어로 질문을 했더니 한국말로 답하거나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지만 더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면 추가로 포스팅 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