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내 생각처럼 바로 구워지진 않는다.

쿠키.. 먹는 쿠키 아닙니다. 개발할 때 사용하는 쿠키입니다.

쿠키는 세션, 겟, 포스트 처럼 기초 중에 기초지만 이 문제로 2번이나 삽질한 관계로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5분 간 반성합니다.

쿠키를 굽는 즉시 쿠키 값을 불러와 DB에 때려박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유는 쿠키가 아직 안 구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쿠키가 0.00001초 안에 구워질 것을 예상하고 굽자마자 꺼내려 들었습니다. 물론 쿠키 속은 공갈빵처럼 NULL 뿐입니다.

그래놓고 왜 쿠키가 안구워졌는지 고뇌합니다. 손님이 들고 오는 오븐의 성능은 각기 다른데 저는 최고급 오븐만 생각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건가요.

정신차리고 저는 쿠키에 들어갈 알맹이를 미리 만들어 놓고 번호를 매깁니다. 쿠키야 구워지던 말던 그 번호를 DB에 때려박습니다. 그러면 쿠키는 언제 구워지든 나중에 찾을 수 있으니깐요.

이걸 가지고 한참을 고민했던 자신을 반성합니다.

 

스페이스 바에 코 박고 10초 간 묵념..

블로그를 개편 중 입니다.

알록달록함이 지겨워서 모노톤의 테마로 개편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군데군데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깔끔하게 정리되기 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 같네요.

지겨운 것도 지겨운 것이지만 메뉴를 확장하여 좀 더 다양한 볼 거리를 만들어 보고자 준비 중입니다.

블로그 도메인을 변경했습니다.

블로그 도메인을 www.freezner.com에서 blog.freezner.com으로 변경했습니다.

단순한 블로그보다는 좀 더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고자 www.freezner.com 도메인은 현재 비워둔 상태입니다.

기존 검색을 통해 www.freezner.com으로 접속하시는 분들께서는 불편함이 없도록 blog.freezner.com으로 연결시켰습니다.

개발자..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논쟁

10여년 전 학생 때부터 줄곧 봐오던 이슈입니다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류의 논쟁은 계속 되나 봅니다.

개발자의 처우 개선을 바라면서 안에서 서로 우월과 하등의 선을 긋는 현상에 모순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수 년 동안 이어져온 이런 맥락의 이슈는 주제가 다를 뿐 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죠.

특정 플랫폼에서 어떤 언어가 더 우월한가? 많은 의견이 쏟아져 나왔고 머지않아 이는 싸움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대게 “자신이 쓰는 언어가 더 우월하다. 다른 언어는 이런 개념이 지원되지 않아 미숙하다.” 라는 식이었죠. 반박과 반박이 이어지면서 끝없는 싸움으로 마치 삼국지를 보는 듯 했습니다. 언어에 따른 진영(파벌?)이 형성된 것이죠. 하지만 이런 논쟁은 보통 개발 경험이 적은 분들에 의해 생겨나더군요. 개발 언어라는게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지 본인이 특정한 언어만 한다고 해서 계속 특정 언어만을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전제하에 벌어지는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비슷한 언쟁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다른 비슷한 논쟁도 있었지요. 개발자 출신과 실력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출신이라면 보통 이렇게 나누더군요..

전공대학출신과 학원출신

이런 말이 왜 생겼는지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말인 즉 대학전공출신이 학원출신보다 실력이 우월하다는 식입니다.  잘못된 일반화의 논리라고 보여집니다. 출신이 실력에 관련 있다는 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구요.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만 더해집니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저는 돌연변이 일까요.. 저는 대학을 관련학과로 전공하지도 않았고(디자인 전공;;)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저처럼 보편적이지 않은 케이스로 IT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분명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정책에 의해 무분별하게 IT 개발인력이 배출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로 인해 배출된 동종업계 사람들까지 차별과 비판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개발자 출신을 실력의 잣대로 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 기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될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 IT벤쳐 붐이 일면서 그 파급력은 청소년에게도 번졌습니다. 제 학창시절 교실 뒤편에 장래희망을 적어 두는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그 곳엔 남학생 80%가 넘는 인원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써놓을 정도로 IT 호황기를 실감할 수 있었죠. 그 사이엔 저 또한 있었구요. (but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현재는 IT 버블이 꺼지는 동시에 유망직종에서 기피직종으로 인식이 기울어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물론 “유망하다, 유망하지 않다”를 보고 단순히 결정할 수 있는 직종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당시에는 학벌이나 차별 없이 흥미와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로 알려지면서 이 분야는 “서로에게 평등한 기회를 준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차별과 불합리한 잣대를 세우는 일부 의견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개발은 앞으로 소위 개발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대중화가 될 것이고 접근성이 더 좋아질 것입니다. “누구나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가는 현재 흐름에서 출신이 그렇게 중요할지 의문이 듭니다. 다만 지식의 깊이에 따른 포지션이 달라질 뿐이죠.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한솥밥을 먹을지 모르는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서로 차별적인 논쟁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진 않습니다. 앞서 말한 논쟁 사이에서 어느 한 분의 말이 떠오릅니다.

“저라면 여기서 싸우고 있을 시간에 코드 한 줄을 더 보겠습니다.”

배움의 기회는 평등해야 합니다.

“배움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이 말이 지닌 뜻이 어긋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공부란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노력의 결실을 맺어 이루어 내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사회적 계급의 사다리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입장”이라는 부분에서 현시대의 모순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왜 발달 했을까요?

남들보다 앞서기 위함 vs 남들과 뒤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

저는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상대적 심리가 예기치않은 경쟁을 불러왔고 이것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심리는 사교육계에서 주로 이용하고 잘 먹혀드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구요.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육아/교육 업계가 침체된 경기임에 불구하고 호황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지요.

“모두에게 교육은 평등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입니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구요. 하지만 이 시대에 없는 자의 교육과 있는 자의 교육의 질은 아무도 같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교육 이전에 사교육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사교육에 대해 비판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제도와 감독이 없다면 상업화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 시장이 공룡같이 거대해지는 동안 수수방관한 관리감독기관의 책임이 큽니다. 이미 커져버릴대로 커져버린 시장은 손을 쓰고 싶어도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과열된 사교육으로 인해 공교육의 수준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좋은 말이 아닙니다. 높아진 수준의 공교육은 사전 학습 없이는 따라 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공교육에서의 평균이 높아지는 바람에 학생들은 그 평균에 진입하기 위해 조기 교육을 받아야하는 상황입니다. 그 조기 교육이라함은 사교육, 부모의 능력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공교육 외의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평균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좌초한다면 이미 따라갈 수 없는 낙오자가 되는 차별을 겪게 됩니다. 이를 우리 사회가 말하는 교육의 양극화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교육의 지나친 상업화는 조기에 진화를 시켰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렇다고 사교육 시장을 죽이는 것은 답이 절대 아닙니다. 교육의 다양화 통해 공교육/사교육 외의 선택지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상업화된 사교육이 아닌 비상업적 사교육도 생겨야 교육의 양극화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비영리 공개 강의 서비스인 edX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명 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공개하여 전세계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운영은 위키피디아와 동일한 후원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위에서 말한 평등한 교육의 좋은 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 우리나라의 경우 언어의 장벽에 걸려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으로 인해 교육의 질이 차이나는 현상은 소수에 의해 다수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때 고민부터 된다면..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시작하고자 할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걸 해야할까, 해도 될까.. 그리고 해야할 근거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 근거의 기준에서 혼란이 오는게 무한 반복입니다.

괜히 손을 댔다가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닐지, 나에게 정작 도움이 되는 일인지..

어떤 때에는 정말 괜찮은 제안이 들어와도 생각하는게 머리 아파 제 발로 들어온 수박(?)을 걷어차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예전에는 남아도는게 잉여시간이라 무리한 걸 알면서도 모든 걸 수용해서 이후에 감당을 하지 못한 기억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잉여시간 자체가 제한되어 잉여시간은 곧 황금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한 일에 뛰어들어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이 때 어느 분의 3줄이 고민을 명확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

1.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2.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3.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

어느 분이 말씀하신건지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저에게는 200%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무엇을 하던지 의미가 있어야 가치있는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3가지가 모두 부합된다면 안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 이상은 고민해봤을 주제입니다. 인생의 목표나 정체성을 바로잡는데 괜찮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전 살아가면서 인생이 2번 바뀌었습니다. 한번은 학교를 졸업 했을 때, 한번은 결혼 했을 때 입니다. 이 변화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는 범주의 질문은 계속 하게 됩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각성제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학교를 졸업 했을 때의 생각

아무래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시기이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때문에 쉽게 방황을 하게 되는 상황이 생겨납니다. 저는 다행히 어린 시절부터 나름 포괄적이나마 목표를 잡았기에 미래에 대한 나의 선택을 좀 더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장래에 대한 목표 설정은 직업과 일에 대한 부분 이었습니다. 그 목표에 포커스를 두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남들과 출발선도 다르고 제 각기 달리는 속도도 방향도 달랐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일수록 돌아가자”라는 신념이 생겨났던 시기였습니다. 평균적인 삶은 평균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현재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달라진 생각들

하지만 결혼 이후 삶의 패턴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우리를 위한 삶으로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험에서 안정으로 선택의 기준이 바뀌게 됩니다. 특히나 자녀가 생기고 난 뒤에는 그 정도가 배가 됩니다. 저 개인의 그릇된 선택으로 저 뿐만이 아닌 한 가정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나 자신보다 자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다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면 결혼하기 전과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순간 방어적이고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주어진 현재에 정체되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대로 살아간다면 당장은 문제가 없습니다. 미래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모습에서 시간만 흐를 뿐인 상황이 될 겁니다.

 

만족스러운 인생의 척도는 행복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 행복을 찾기 위해 일에 쫓기고 돈에 쫓깁니다. 행복을 얻기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희생이 장기화되면서 몸에 익숙해 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희생의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소소한 행복의 시간을 지나치게 되고 훗날에는 모든 걸 이루더라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이 었을겁니다. 이룰 것이 더 이상 없는 위치에 있음에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풍족함이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끝 없는 쳇바퀴

학생들은 행복한 삶을 위해 고된 공부를 합니다. 어른들은 행복한 삶을 위해 고된 일을 합니다. 지금은 고생하지만 미래는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쳇바퀴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오직 공부와 일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공부는 좋은 직장/직업을 얻기 위한 기초 수단입니다. 직장과 직업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 입니다. 풍요로움은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 수단 중 하나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패턴은 단편화 되었습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가고 좋은 곳에 취직한다.”
한마디로 평범한 인생의 정석인 셈입니다. 인생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고속도로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라도 교통량이 많다면 정체가 되듯 이 인생대로에서 서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포맷이 되어 버립니다. 넘쳐나는 혼잡 속에서 명문대라는 톨게이트와 대기업이라는 톨게이트를 지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 되어 있습니다. 그 한정된 사람 이외의 사람들은 재 진입을 시도하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너도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일반화가 되어 버리고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남들도 마찬가지로 보이기 때문이죠. 과연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더 달려야 할까요? 그리고 남들이 바라보던 목표에 도달했을 때 과연 행복이 찾아올까요?

 

우리의 인생은 타 들어가고 있는 도화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갑니다. 시간은 소중합니다.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현재에 대해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해야 합니다. 또 계획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명문대, 대기업, 부는 목표가 아닌 사회적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를 이룬다면 더 할 나위 없지만 3년 4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에 대해 지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해답이 없다면 해답을 찾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보험이 될 것입니다. 다른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말 인생의 목표,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면 현실에서 잠시 떠나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다른 경험을 통해 인생의 다양성을 느껴보세요.

 

인생이라는 게임에 규칙은 없다.

인생은 게임과 같습니다. 이 자유로운 게임에서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고 오직 한 방향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수 많은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깊이와 가치는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그 깊이와 가치를 통해 인간은 성취를 하게 되고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메뉴얼도 정답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지금 이런 룰에 갇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왔는지,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진 않았는지, 제자리에서 머물러 있었는지를..

 

태어나자 마자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적어도 기계 같은 인생을 살다 가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즐기며 살다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인생은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의 집합입니다.

전기컨벡터에 대한 솔직한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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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컨벡터를 구매하게 된 계기

한달 전,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대비를 하고자 난방기구를 집에 하나 더 들여 가스난방비를 줄여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몇 번의 한파가 있는 달은 20만원이 우습다고 나와버리는 고지서가 부담되었고 그렇다고 아기를 키우는 집에서 버틸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여러 보조난방기구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각기 장단점이 있기에 신중하게 선택하려 했다.

보조난방기구라고 하면 보통 전기 스토브나 히터 종류가 떠올랐다. 그 뒤로 이들은 공기가 건조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가 따라 오고… 그 와중에 소셜커머스를 통해 컨벡터라는 녀석을 보게 됐다. 컨벡터라는 말이 나에게는 좀 생소했기에 궁금한 점이 많았다.

공기를 태우지 않고 소음이 없고 냄새도 없고 부피도 적고…

내가 찾는 물건이구나 싶었다. 라디에이터라고 보면 이해가 쉬웠다. 뜨거운 바람이 아니고 흐르는 공기를 데워서 한정된 공간의 차가운 공기를 따뜻한 공기로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찬 공기는 아래로 뜨거운 공기는 위로 이동한다는 대류의 특성을 이용한 것인데 때문에 설치 높이도 바닥으로부터 약10cm정도로 낮았다.

일단 어떤 녀석인지 알았으니 구매하기로 했다. 거실에 쓸 것이니 제일 큰 걸로..

 

전기컨벡터의 놀라운 성능

집에 컨벡터가 도착했고 벽에 설치를 했다. 길이는 길었지만 속이 비어있는 것 같은 가벼움이 느껴져 설치가 어렵진 않았다. 설치를 완료하고 이제 사용해보기로 했다. 전원을 켜고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슬슬 올라왔다. 하지만 이게 거실 전체를 데울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30분이 지난 후, 실내가 따뜻해지고 있었다. 찜통 같지 않은 은은한 온기(?)가 거실 대부분에 퍼졌다. 첫 사용 소감은 신기했고 보일러 따위는 필요 없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바닥은 차지만 실내용 슬리퍼를 신으면 문제될게 없었다.

그 후로 아침 저녁으로 컨벡터를 사용했고 훈훈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한전 직원이 집에 찾아왔다.

“계량기가 너무 빨리 돌아서 점검 차 들렸습니다. 혹시 보조 난방기 사용하시나요?”

대답은 Yes 였다. 그러자 한전 직원 분이 말을 이었다.

“힘드시겠어요. 아이도 키우는데 전기요금이 10배가 넘게 나오셨어요.”

충격적이었다. 예년 전기사용료는 4만원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2만원도 나오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이는 투철한 와이프의 전기절약 정신 덕분이었는데 그 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연말정산 보너스는 옷 깃을 스치며

사실 컨벡터는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번 써보고 나오는 요금보고 조절하자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한번 써보고”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란 것은 둘 다 인지하지 못했다.

정확히 “연말정산 보너스 +17 만원 축하드립니다.” 통지를 받고 난 다음 날 “전기료 -38만원 명복을 빕니다.” 통지를 받았다. 받은 만큼에 두 배를 토해내라는 기분은 씻을 수가 없었다. 가스비 20만원 아끼자고 전기료 40만원을… 후덜덜이다. 그래도 연말정산 환급이 그나마 방어를 해준 기분이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사건 이후, 우리 와이프가 달라졌어요.

그 뒤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잠깐 틀어볼까 하고 컨벡터 스위치를 올려보니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와이프가 전기 코드 조차 뽑아버린 것이었다. 그리곤 와이프는 강령을 하사하셨다.

“아기가 추워할 때 빼곤 틀지마”

이 한마디는 “이 물건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세지와 같다. 내가 전기를 자가 발전하지 않는 이상 컨벡터의 불빛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수입 난방기구 타이틀의 속내

전기 폭탄을 맞은 뒤로 정신을 차려보니 전기 난방기는 여름철 에어컨보다 더 무서운 “퍼시 잭슨과 전기(번개)도둑”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와 같은 전기 폭탄을 맞은 다른 사례를 들어보니 그 집도 한전 직원분이 놀라서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곤 한마디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 누진세가 사라지지 않는 한은 가정에서 이런 거 쓰시면 큰일나세요.”

누진세가 문제였다. 이런 무서운 누진세.. 전기컨벡터는 유럽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난방기구라고 소개된다. 잘 생각해보면 그게 좋아서 많이 사용 하는게 아니란 걸 알았다.

“서양은 온돌이 없다.”

이 한마디로 모든 설명은 끝났다고 본다. 난방에 의지할 기구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중에 흔히 쓰는게 전기컨벡터였다. 이 녀석은 소비전력이 만만치 않다. 내가 산 컨벡터는 소비 전력이 2500W.. PC 한대가 500W라고 생각하면 PC 5대를 풀로드 상태로 돌려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서 급 결론을 내자면…

그냥 집 단열 좀 더 신경 쓰고 가스비에 연연하지 말고 보일러 틀고 현자처럼 살아야겠다. 컨벡터는 영하의 기온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 사용하는 걸로..

도입 이후 한 달, 도로명주소에 대한 생각..

도로명주소 전면시행이 된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과연 이 도로명주소 체계가 합리적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어왔습니다.

1. 도로명 체계 도입 배경과 근거

정부에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선진국이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체계라며 도입 배경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체계를 도입한다면 사용자들에게 이해를 시켜주는 것이 우선인데 너무 조급하게 시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2. 국제화 트렌드에 앞장선 외래어 사용

급하게 시행했다는 기분은 다른 부분에서도 느껴졌습니다. 도로명에 대한 부분인데 무분별한 작명에서 상당수 외래어가 사용된 점인데 오랫동안 사용해왔고 그 지역을 대표하던 지명이 사라지고 외래어 도로명이 생김으로써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디지털로”, “사파이어로”, “로봇랜드로”, “비즈니스로” 등등 이외에도 “엘씨디로”, “모듈산업화로”, “APC로”와 같이 영문약자 또는 영문표기, 영문+한글을 합친 알 수 없는 명칭도 생겨버렸고 심지어 특정 기업명을 도로명으로 사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국제화를 이유로 이런 외래어 도로명이 무분별하게 지정되었고 한글과 문화의 훼손에 앞장선 꼴이 된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3. 도로명주소는 국제 표준?

도로명주소는 국제 표준을 따른 합리적인 주소 체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소 체계에 표준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합니다. 미국식 주소체계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지역설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계획적인 도시설계로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짓지만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땅의 구획을 먼저 지정하고 건물을 지은 뒤 도로가 깔려왔습니다. (일부 계획도시는 제외) 때문에 길이 잔 나무 가지처럼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졌고 수없이 많은 골목길에도 하나하나 도로명이 생겨납니다. 그 양은 아주 방대한 수준이죠. 이미 우리나라의 지역설계 자체가 도로명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지번주소를 계속 유지한다는 주장도 찝찝하긴 마찬가지입니다.

 

4. OO동(리)이 사라진 도로명주소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던 동(리)단위가 도로명주소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이게 불편을 겪게 되는 핵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동명칭은 우리도 모르게 긴밀하고 깊숙이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던 지역 구별단위였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지하철역명을 살펴보겠습니다.

문래역, 이촌역, 압구정역, 청담역, 신당역, 방배역, 사당역, 합정역 등등 동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역이름이 상당히 많습니다. 덕분에 대략적인 지역을 인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명들은 오랫동안의 시간과 지역 특색에 따라 내려오던 역사와도 같은 의미를 둘 수 있는데 이것이 사라진다면 도로명주소 도입 여부와 별개로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이런 측면이 있는가 하면 주소를 다루는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불편함은 배로 다가옵니다. 동단위가 없어지게 되자 최소 구역단위는 자연스럽게 시, 군, 구가 됩니다. 서울의 경우 이로 인해 구 하나에 많게는 1000여개의 길을 다루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의 도로명이 2개 이상의 구에 중복되어 존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단순 명칭 중복인 경우도 있겠지만 하나의 길이 여러 구를 지나갈 때 흔히 보여지는 현상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이로인해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 상태입니다.

 

5. 도로명주소 도입이 문제가 아니다.

도로명주소 도입 자체는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였다시피 도로명의 외래어 사용, 동단위 지명 삭제의 이슈는 지켜보고만 있자니 너무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마도 현재 도로명 주소에 동단위만 표기가 되어도 현재에 느끼는 불편의 대다수는 해결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왜 동단위 지명이 사라졌을까?” 의문에 조사를 해봤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국제적으로 동 지명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동 지명이 일제시대의 잔재였기에 이를 제거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일제 잔재를 없애겠다는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국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고유지명이 없애겠다는 발상은 공감하는데 무리가 있었습니다. 국제 표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쉽고 좀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주소체계에 초점을 두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6.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겠지

도로명주소를 환영하는 분들의 대부분 생각은 “초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 또는 “시간이 지나고 후세에는 보편화 될 것이다”로 수긍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적응의 문제가 아닌 정말 합리적인가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도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하고 불편함을 잊게 됩니다. 그 전에 문제가 있다면 수수방관하지 않고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도로명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가 익숙해지면 하나는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잊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신림동, 역삼동, 대치동, 청담동, 마장동, 혜화동 과 같은 지명들입니다. 익숙해질 때 즈음이면 이미 지도의 판이 180도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OO동으로 불리는 대신 OO길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했던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안타깝게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