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회는 평등해야 합니다.

배움의 기회는 평등해야 합니다.

“배움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이 말이 지닌 뜻이 어긋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공부란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노력의 결실을 맺어 이루어 내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사회적 계급의 사다리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입장”이라는 부분에서 현시대의 모순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왜 발달 했을까요?

남들보다 앞서기 위함 vs 남들과 뒤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

저는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상대적 심리가 예기치않은 경쟁을 불러왔고 이것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심리는 사교육계에서 주로 이용하고 잘 먹혀드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구요.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육아/교육 업계가 침체된 경기임에 불구하고 호황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지요.

“모두에게 교육은 평등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입니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구요. 하지만 이 시대에 없는 자의 교육과 있는 자의 교육의 질은 아무도 같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교육 이전에 사교육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사교육에 대해 비판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제도와 감독이 없다면 상업화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 시장이 공룡같이 거대해지는 동안 수수방관한 관리감독기관의 책임이 큽니다. 이미 커져버릴대로 커져버린 시장은 손을 쓰고 싶어도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과열된 사교육으로 인해 공교육의 수준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좋은 말이 아닙니다. 높아진 수준의 공교육은 사전 학습 없이는 따라 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공교육에서의 평균이 높아지는 바람에 학생들은 그 평균에 진입하기 위해 조기 교육을 받아야하는 상황입니다. 그 조기 교육이라함은 사교육, 부모의 능력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공교육 외의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평균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좌초한다면 이미 따라갈 수 없는 낙오자가 되는 차별을 겪게 됩니다. 이를 우리 사회가 말하는 교육의 양극화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교육의 지나친 상업화는 조기에 진화를 시켰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렇다고 사교육 시장을 죽이는 것은 답이 절대 아닙니다. 교육의 다양화 통해 공교육/사교육 외의 선택지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상업화된 사교육이 아닌 비상업적 사교육도 생겨야 교육의 양극화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비영리 공개 강의 서비스인 edX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명 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공개하여 전세계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운영은 위키피디아와 동일한 후원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위에서 말한 평등한 교육의 좋은 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 우리나라의 경우 언어의 장벽에 걸려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으로 인해 교육의 질이 차이나는 현상은 소수에 의해 다수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